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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 찜통, 밖은 땡볕'…폭염에도 도망갈 곳 없는 쪽방촌

사건/사고

    '안은 찜통, 밖은 땡볕'…폭염에도 도망갈 곳 없는 쪽방촌

    9일 낮 기온 36.0도…"방 안은 찜통"
    목욕탕·선풍기·쿨링포그로 더위 견뎌
    여름철 가스버너·전기 등으로 화재 위험도
    IoT로 쪽방촌 전기 위험 실시간 감시 대응
    10일에도 전국 폭염 이어진다…서울·광주 35도

    9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이 골목에서 쿨링포그를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송선교 기자9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이 골목에서 쿨링포그를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송선교 기자
    9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며칠째 폭염특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쪽방촌 주민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위나기에 한창이었다. 변변찮은 냉방기의 도움을 받아 무더위를 버텨보지만, 가끔은 생존의 문제가 될 정도로 더위는 이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냉방기를 줄곧 가동하는 일도 망설여지는 측면이 있다. 쪽방촌은 늘 누전 등으로 화재 위험에 노출돼서다.
     

    선풍기 틀고 옷 '훌렁'…"더워서 냉수에 밥 말아 먹어"

    이날 낮 12시,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덥고 습한 공기가 기자의 콧속을 찔렀다. 강한 햇볕에 정수리는 단숨에 뜨거워져 현기증이 났다. 몇 걸음만 걸어도 이마에 맺히는 땀은 이르게 찾아온 한여름을 실감나게 했다.

    3번 출구에서 나와 상가 뒤편으로 들어가면 2~3층짜리 건물이 3m 남짓한 골목길 양쪽으로 빼곡히 늘어선 모습이 보인다. 건물 안에는 사람 1명이 겨우 지나갈 너비의 복도에 1평 남짓한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불볕더위 아래 놓인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풍경이다.
     
    쪽방촌 주민들은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었다. 몇몇 주민들은 바깥으로 나와 골목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안에 못 있어요. 안은 찜통이야." 주민 김모(64)씨가 볼을 타고 흐르는 땀을 옷으로 닦으며 말했다. 건물에 에어컨이 없는 탓에 바깥이 방 안보다 시원하다는 것이다. 뙤약볕만 피한다면 밖이 안보다 더위를 버티는 보다 나은 방법이었다.
     
    이곳에 17년째 살고 있는 고세영(72)씨는 "무지하게 덥다. 밖에 있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고씨는 서울시립 돈의동 쪽방상담소에서 나눠준 이용권으로 목욕탕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는 "목욕하고 오거나 방 안에서 선풍기 틀고 가만히 있으면 땀이 조금은 마른다"면서 기자를 집 안으로 초대했다.
     
    고씨를 따라 들어간 방 안은 찜통과도 같았다. 고씨는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선풍기를 틀고는 속옷만 남겨둔 채 입고 있던 옷을 훌렁 벗었다. 그가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다. 건물 복도에는 에어컨 한 대가 있었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 고씨는 "(건물 주인이) 에어컨은 저녁 8시쯤부터 오전 5시쯤까지만 틀어준다"고 말했다.
     
    고씨는 과거에 요리사였다고 한다. 그런 고씨에게는 좁은 방 안에서 요리하는 것이 삶의 낙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씨에는 요리조차도 사치다. 가스버너를 켜면 방 안이 금세 더워져서다. 그는 "찌개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 편이라 늘 끓여 먹으려 한다"면서도 "오늘은 더워서 그냥 냉수에 밥을 말아 먹었다"고 했다.
     

    쪽방촌 화재 37.5%가 전기 요인…최근 구룡마을서도 화재

    9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한 건물 출입문에 화재 주의를 당부하는 서울시립 쪽방상담소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송선교 기자9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한 건물 출입문에 화재 주의를 당부하는 서울시립 쪽방상담소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송선교 기자
    고씨가 가스버너를 켜지 못하는 이유는 더위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이곳에서는 가스버너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불이 나 건물 하나가 전소하고 60대 주민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고씨는 화마의 무서움을 잘 아는 듯 요리할 때는 항상 선풍기를 끈다고 했다. 불이 순식간에 주변으로 번지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다.
     
    낡고 부실한 방들이 다닥다닥 붙은 쪽방촌은 여름철 전기 화재에도 취약하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여러 건물에 에어컨이 보급되고, 주민들이 TV, 선풍기 등을 들여놓으며 좁은 방 안에 여러 가전제품이 놓인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에 구청에서는 자동으로 전기 과부하를 차단하는 멀티탭을 집마다 설치하기도 했다. 고씨는 "가끔 전기가 잘못되면 이게(멀티탭 스위치) 자동으로 꺼진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쪽방촌 화재 중 37.5%가 전력선 과부하와 전선 노후 등 전기 문제로 일어난다. 실제로 지난 6일 오후 3시 23분쯤 판자촌 밀집 지역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불이 났는데, 소방당국은 가전기기에서 불이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 화재로 인해 건물 안에 있던 냉장고와 TV 등 가전기기가 모두 탔다.
     
    이에 돈의동 쪽방상담소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쪽방촌에 1155개의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설치해 전기 이상 징후를 24시간 내내 감시하고 있다. IoT 센서가 전기 이상 징후를 감지하면 즉시 쪽방 주민과 상담소에 경고 문자를 발송하고, 현장 점검을 통해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아울러 상담소는 가스버너를 껐는지, 가전기기 전원을 껐는지 등을 체크하라는 안내문을 건물 곳곳에 붙여놓았다. 소방청도 골목 곳곳에 화재 대처 요령을 정리한 포스터를 붙였다. 낮 기온이 절정에 달한 오후 2시 30분쯤 돈의동 쪽방촌 골목에서는 소방대원들이 살수 작업을 펼치기도 했다. 소방 호스로 물을 뿌려 지열을 가라앉히는 조치였다. 
     
    한편 이날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에서도 주민들이 더위나기에 한창이었다. 이들도 오전 9시부터 집밖에 나와 몸을 식히고 있었다. 특히 이들의 더위를 식혀주는 것은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쿨링포그'였다.
     
    쿨링포그는 인공 물방울을 흩뿌려 안개를 만들어 주위 온도를 낮추는 장치다. 영등포동 쪽방촌과 돈의동 쪽방촌 골목길에는 모두 머리 높이로 쿨링포그를 만드는 장치가 깔려 있었다. 쿨링포그를 맞으며 쉬고 있던 이확길(59)씨는 "선풍기를 틀어도 더운 바람이 나와서 바깥보다 방이 더 덥다"며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지하철을 타서 더위를 식힌다"고 말했다.

    서울 낮 최고기온이 36.0도를 기록한 9일 오후 2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골목에서 소방당국이 지열을 가라앉히기 위한 살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송선교 기자서울 낮 최고기온이 36.0도를 기록한 9일 오후 2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골목에서 소방당국이 지열을 가라앉히기 위한 살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송선교 기자

    전국 온열질환자 1228명…외출 자제·수분 섭취 필요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이날 서울은 낮 최고기온 36.0도를 기록하며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낮 기온 37.8도로 7월 상순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전날의 열기가 쉽게 가라앉지 않으며, 밤사이 열대야도 열흘 연속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서쪽 지역을 중심으로 기온이 높게 나타나면서 경기 파주 광탄면의 낮 최고기온이 39.2도를 기록했고, 전북 정읍의 기온은 37.8도까지 올랐다.
     
    연일 전국에서 온열질환 사고도 속출하고 있다.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부터 지난 8일까지 집계된 온열질환자는 총 1228명이며 사망자는 8명이다. 그중 지난 7일에만 온열질환자가 105명 발생했으며, 8일에는 온열질환자가 무려 238명 추가됐다. 사망자도 1명 있었다.
     
    온열질환을 예방하려면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고, 야외 활동 시에는 밝은색 계열의 가벼운 복장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또 수분과 염분 등을 충분히 섭취하고,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더위는 10일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낮 기온은 서울·광주 35도, 대전·청주 34도로 오늘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을 것으로 예보된다. 늦은 오후쯤에는 서해안과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기온은 다음 주까지 조금씩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여전히 평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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