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마르 베리만 감독. 연합뉴스20세기 영화 예술의 문법을 새롭게 쓴 거장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의 자전적 에세이 '환등기'가 한국어판으로 처음 출간됐다.
이번 책은 베리만이 생의 말년에 스웨덴 포뢰섬에 머물며 쓴 회고록으로, 스웨덴어 정본을 충실히 번역한 국내 최초의 정식판이다.
'환등기'는 전통적인 자서전의 형식을 벗어나 마치 영화 편집처럼 시간과 기억,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구성됐다. 목사였던 아버지, 우울증에 시달렸던 어머니, 성격이 엇갈린 형제들과의 유년 시절부터 연극 연출가로서의 시작,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내밀한 고백이 이어진다.
책 제목이기도 한 '환등기'는 베리만이 어린 시절 형에게서 꾀어낸 슬라이드 영사기로, 그의 영화 세계를 열게 한 기원으로 반복 등장한다. '화니와 알렉산더', '마술사' 등 그의 작품 속 이미지와 상징들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들이 곳곳에 녹아 있다.
민음사 제공 베리만은 글 속에서 '가을 소나타' 촬영도중 명배우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갈등, 탈세 누명으로 인한 침묵의 시간, 사랑과 파탄, 리브 울만을 만나 사랑에 빠진 일 등 거장의 삶을 관통한 굴곡진 경험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카라얀, 로런스 올리비에, 마를레네 디트리히 등 영화계 동료들과의 일화도 실려 있으며, 데이비드 린치, 마틴 스코세이지, 프랑수아 트뤼포, 박찬욱 등 세계적 감독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베리만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베리만이 은막에서 물러나 스웨덴 포뢰섬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9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초고를 담은 마지막 '연출작'이기도 하다.
잉바르 베리만 지음 | 신견식 옮김 | 민음사 | 380쪽